천년호 (1969, 신 상옥)

 

스모키 화장의 원조. 섬뜩하다



 천년호는 1000년 묵은 여우를 소재로 한 판타지물이다. 퇴마로 호수에 봉인되었던 1000년 묵은 여우의 영혼이 원랑의 아내 여화의 몸에 들어온다는 구전설화적인 내용이다. 최근 제3회 시체스 환상 공포 영화제 황금감독상 수상으로 관심이 더욱 증폭된 영화이다.

영화의 개봉당시 메인카피는 <지옥마왕의 명을 받고 왔다. 육천 세계를 내가 지옥으로 만들리라...> 였다고 한다. 지금 보아도 섬뜩해지는 말이다. 당시 천년호는 공포영화로 개봉을 했다. 흐르는 피, 공포스러운 녹색과 적색의 조명, 난데없이 벌떡 일어나 사람을 놀라게 하는 구미호... 하지만 충분히 무서울 수 있는 장치들임에도 정확히 40년이 흐른 후에 보니 공포영화 라기보다는 시대물같이 느껴졌고 가끔 웃음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천년호는 화면비가 가로로 조금 더 넓었다. 천년호의 화면 비는 2.35:1의 와이드 스크린, 즉 시네마스코프라고도 불리는 화면 비다. 와이드스크린은 1950년대 초 할리우드 영화 제작사들이 텔레비전으로 인한 관객 감소를 막기 위해 도입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와이드스크린으로 제작된 영화는 1958년 <생명>이라는 백치 아다다를 연출한 이강천 감독님의 작품이었다. 천년호는 이보다 11년 늦게 와이드 스크린을 사용했다.


스턴트맨의 화려한 공중제비




 공중제비를 도는 여화, 춘화추동을 한 자리에서 견디는 원랑, 여화의 잘린 팔의 효과는 현재라면 CG나 특수효과, 후반작업등을 통해 간단히(?)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와이어조차도 갓 쓰이기 시작한 60년대에는 이를 간단히 해결하기 어려웠을 것 이다.

하지만 할 수 없다고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아이디어를 짜내어 새롭고 기발한 기법을 사용한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공중제비를 도는 여화를 표현하기위해 여화와 체구가 비슷한 곡예단의 사람을 사서 와이어로 공중제비를 도는 장면을 녹화한 필름을 되감았을 것이다.



 꽃이 피고 나무가 우거지고 낙엽이지고 눈이 내리는 가운데의 원랑을 표현하기 위해 연출부 스탭들은 눈을 만들어 뿌리고, 낙엽을 뿌렸을 것이다. 또한 이를 자연스럽게 연결하기 위해 수작업으로 광학효과를 만들어 사용했을 것이다. 나는 영화 전체에서 이 씬이 가장 기억에 남았는데, 기발한 특수효과뿐만이 아니라 연출 적으로 너무도 매력적인 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망부석처럼 여화의 앞을 지키고 앉은 원랑에게 춘하추동의 시간이 흘러가는데 나는 이 시간이 일 년이 아닌 영겁의 시간처럼 느껴졌다. 시각적으로는 은행나무 침대의 눈을 맞고 있는 황 장군이 연상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오마주라고 생각될 정도로 느낌이 비슷했다.) 가질 수 없는 사랑을 원하는 이들에게 허락되는 것은 단지 기다림 뿐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와 같은 장면은 장예모 감독의 2004년 작 <연인>에서도 볼 수 있다. 장쯔이를 사이에 두고 펼치는 유 덕화와 금 성무의 대결에서 눈이 내리고 낙엽이 지며 마치 천년호에서 보여진 것 같은 시간의 흐름을 보여준다. 장 예모가 이 씬을 연출한 것에 언론들이 엄청난 찬사를 보냈던 것이 기억나는데, 무려 45년 전에 신 상옥 감독이 이런 장면을 앞서 연출했다는 것이 괜히 자랑스러웠다.



 요 근래의 영화에서 여주인공의 팔이 잘렸다면, 잘린 팔에서 흘러나온 근섬유와 혈관, 피까지 재현해 낼 것이다. 그러나 여화의 잘린 팔은 품이 크고 하늘하늘한 소매 속에 숨겨서 표현되었다. 팔을 90도로 구부려 허리에 동여맨 것이 눈에 띄이지만 사실 영화를 보는데 팔이 거슬려서 못 보겠다 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역시 좋은 시나리오만이 좋은 영화를 만든다...

 

 

by 아줌마씨 | 2010/05/12 23:27 | 영화 | 트랙백 | 덧글(1)

티켓 (1986)

 항구에 있는 작은 티켓다방에 모인 여자들은 서로 다른 모습만큼이나 제각기 다른 인생을 살아간다. ‘남자’라는 한 울타리 안에 엮인 여자들의 삶은 애처롭고 안타깝기만 하다. 무능한 남자들을 대신해 돈을 벌거나, 남자들에게 배신당하고, 상처받아 다방으로 흘러오게 된 여자들. 마담부터 막내에 이르기까지 다섯 명의 여자들은 자기만의 이야기들을 가지고 있다.


 미스 양으로 분한 안소영씨의 몸매는 정말 놀라웠다. 대부분의 여배우들은 금욕적이고 정숙한 이미지로 인기를 끌었던 시대였지만 안소영은 볼륨감 있는 몸매로 남성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특히 가슴성형이 일반화 되지 않았을 시대였으니 안소영의 몸매가 정말로 타고난 것이었다면 정말 대단한 볼륨감이라는 생각이 든다. 안소영은 82년에 개봉한 <애마부인>으로 유명세를 탔다. <애마부인>은 개봉 당시 31만명의 관객동원으로 그 해 한국영화중 관객동원 1위를 차지하고, 한국영화사상 13편의 속편제작이라는 괴물 같은 기록을 가지고 있다.또한 한국영화 최초로 심야상영이 이루어진 영화였는데, 심야 상영일 날 좌석수가 1500석인 서울극장에 5000명이 몰려 매표소가 박살나고 경찰까지 출동했다는 웃지 못할 기록을 가지고 있다. 86년에 개봉한 <티켓>은 기존에 존재하던 안소영의 섹스심벌의 이미지를 차용한 셈이다. 아마 안소영을 보기 위해 극장으로 몰려든 관객도 적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티켓>에서 그녀는 자신의 인생과도 닮아있는 캐릭터의 연기를 하면서 비참함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배우가 되고 싶은 마음에 유명배우와 하룻밤을 보내지만 몇 일 뒤 그 배우는 약속과는 달리 자취를 감추어버린... 하지만 그녀는 단지 스타가 되기 위해 배우의 길을 택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요 근래에도 조연 및 단역으로도 간간히 출연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 정말로 그녀는 연기를 하고 싶은 열망이 강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 우리세대에게는 <미안하다 사랑한다> 의 윤이 엄마로만 기억되는 이혜영씨의 초기작이라는 점이 재미있었다. 나는 미사를 보았을 때 이혜영씨가 중년의 신인배우치고는 굉장한 카리스마가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녀의 오래된 배우내공을 몰라준 것이 미안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의 특이한 목소리는 영화 내내 또랑또랑하게 귀를 파고든다. 날카로운 목소리로 파고든 대사는 안타까웠다. 그녀는 영화 초반에서는 단순히 색을 즐기는 여성처럼 나오지만 그녀의 어머니가 찾아오며 진실이 드러난다. 아픈 아버지를 대신해 돈을 버는 그녀는 아버지의 약값과 병원비에 허덕이다 못해 다방 레지의 길로 뛰어든 것이다. 또한 딸이 힘들게 돈을 버는 것을 알면서도 딸에게 돈을 요구하는 어미가 너무도 잔인해 보여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사연 없는 무덤이 어디 있겠는가. 다방의 애물단지인 미스 주도 남편과 이혼하고 아이를 키우기 위해 항구까지 흘러들어왔다.


 통념속의 다방레지와는 판이하게 다른 얼굴을 가진 전세영도 시골에 계신 아버지와 동생들을 부양하기 위해 사무실에 취직했다고 거짓말을 하고 다방에서 일을 한다. 그녀에게는 언제까지나 곁을 지켜줄 것 같았던 남자친구 민수가 있었다. 세영은 그의 아르바이트자리를 구해주기 위해 거금 30만원을 가불해 주기도하고, 일이 바쁜 와중에도 틈틈이 민수를 만나러간다. 세영은 민수 와함께 아버지 회갑연에 상견례를 드리러가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민수는 세영에게 이별을 고한다. 많은 남자와 놀아났기 때문에 싫다는 것이다. 나름대로 남자친구에게 헌신적이었던 세영은 쇼크에 빠진다.


 물론 세영의 잘못이 없는 것은 아니다. 변해가는 세영의 모습을 보며, 관객인 나조차도 소름이 돋았다. 처음에는 다른 남자의 손만 닿아도 소리를 지르던 세영이 남자친구 앞에서 다른 남자의 품에 안기거나, 단골 손님인 선장에게 전화해 보고 싶다거나,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민수보다 손님과의 섹스에 더 적극적이 되는 세영을 보며 사람이 그렇게까지 변할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메이크업, 의상이 조금 바뀌었다고 그래도 되는 것일까? 영화에서 음악은 너무하다싶을 정도로 빈번하게 나오는데, 세영이 손님이나, 민수와 관계를 가질 때는 항상 구슬픈듯한 노래가 흘러나온다. 이는 세영이 점차 타락하는 것을 더 강조하기 위함이라 생각된다.
 

 마담의 메타포로 사용되는 흰 계란은 요즘은 찾아보기 힘든것이 되어버렸다. 그 이유인즉슨 흰 계란을 낳는 닭은 계란의 생산성이 별로 좋지 못하다는 통념아래 1970년대 이후 흰 닭을 갈색계란을 낳는 닭으로 다 바꿔 버렸기 때문이라 한다.


 또한 이제껏 잘 보지 못했던 킹크레인의 등장이 기억에 남는다. 사실 항구마을의 전경을 비추는 것이 큰 의미는 없는 듯이 느껴지기는 했지만 쭉쭉 올라가는 앵글속에 비친 바다는 보는 이마저 시원하게 해주었다.


 마담은 민수와의 결별에 힘들어하는 세영을 보고 민수를 만나 설득한다. 하지만 민수는 마담 앞에서 거침없이 세영을 비난한다. 화가 난 마담은 민수를 물고문하기에 이른다. 이는 마담이 전 남편에게 받은 상처와, 여자들이 무능한 남성들에게 받았을 상처에 대한 억울함과, 단죄 그 자체였다.

by 아줌마씨 | 2010/04/05 23:56 | 영화 | 트랙백 | 덧글(0)

청춘 쌍곡선 (1956)


스틸이미지

당시의 세트 모습이다. 박시춘선생과 김시스터즈.

 <청춘 쌍곡선>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미몽>, <반도의 봄>과 달리 장면전환에 광학효과가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디졸브와 블랙아웃이 자연스럽게 사용되어 세련된 느낌이었다. 요즘의 광학효과는 컴퓨터의 편집 프로그램만으로도 단순히 처리할 수 있지만 50년대 당시의 광학효과는 광학인화기를 이용했다. 처음 광학인화기는 비용 등의 문제로 생기는 세트장의 존재하지 않는 요소들을 채워넣기 위해서 사용되었다. 광학인화기란 카메라 렌즈에 조준이 된 영사기의 형태이다. 전진과 후진, 렌즈의 교환도 가능하다. 영상의 일부를 가리거나, 복사할 수도 있다. 이렇게 촬영된 영상들은 이중인화가 가능했고 각각의 영상들을 합칠 수도 있었다. 또 다른 방법은 매트박스를 이용해 프레임에서 노광되지 않을 부분을 가리는 것이다. 노광되지 않아야 할 부분이 이중이라면 두 개의 매트박스를 사용하기도 한다. 노광되지 않은 부분은 후에 특수효과 전문가가 매트 페인팅으로 채워 넣었다. 또한 컷 바이 컷으로 넘어가는 고전의 장면전환 방식이외에도, 창을 프레임에 가득 채운다음 밤에서 낮으로 바뀌는 등의 영리한 장면전환을 했다.


 <청춘 쌍곡선>의 대부분은 풀 샷으로 이루어져 있다. 단, 바로 풀 샷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프레임의 한 부분에 주목했다가 (인물의 얼굴이 대부분이었다.) 달리를 사용해 빠지면서 앵글을 넓게 잡는다. 명호의 집과 병원을 비롯한 세트 촬영이 많아서인지, 방에서 방으로 넘어 갈 때 컷으로 나누지 않고 달리를 이용해서 그대로 쭉 따라간 점이 인상 깊었다.


 특히 병원에서의 오프닝 씬이 기억에 남는다. 작곡가 박 시춘 선생님이 의사로 나오는데, 고고학자가 쓸 법한 모자를 쓰고 만담을 한다. 그 옆에는 간호사로 분한 김 시스터즈가 ‘즐거운 토요일’을 낭랑하게 부른다. 뮤지컬 영화는 현대에 와서 생겨난 장르라고 생각했었는데 1956년에도 음악과 이야기가 함께하는 영화가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청춘 쌍곡선>은 처음부터 관객들을 웃게 만든다. 학교에서 고전 영화를 수업시간에 보면 웃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 나부터도 웃음이 빵 터졌다. 박 시춘 선생님과 단짝으로 나오는 마른 아저씨가 주거니 받거니 콩트를 한다. 명호가 못 먹어서 배가 아프다하니 마른 아저씨는 우스꽝스럽게 자기 배도 좀 봐달라고 한다. 못 먹은 배에서 뿌우 뿌우하고 고동소리가 나는 것이 기발했다. 박 시춘 선생님이 진료를 마치고 나가려 할 때 너무 먹어 탈이 난 부남이 들어오는데, 문 앞에서 맞부딪혀 오버액션 하는 것은 슬랩스틱의 표본이었다. 의사는 명호와 부남에게 이 주간 집을 바꿔 지내라고 처방한다. 이야기를 시작하게 하는 대사이기도 하지만, 기발한 처방에 웃음이 나왔다.


 부남과 명호의 집을 비교해보면 많이 차이가 난다. 부남은 명호의 집을 하꼬방이라고 부르는데 하꼬방은 일본어 상자에서 유래한 부산 사투리다. 방이 박스처럼 작다는 의미로 부르는 말이다. 부남의 집은 명호의 집과 반대로 으리으리하다. 가사 도우미를 두고 있을 정도이니, 당시로써 어마어마한 부자인 듯 해보였다. 우리나라의 1956년은 한국전쟁이 끝난 후 나라를 추스르고 있을 때 였다. 영화의 무대가 전쟁의 피해가 덜했던 부산이라 해도, 전쟁은 사람들의 생활과 경제에 많은 피해를 주었을 것 이다. 물자의 부족, 산업시설의 파괴, 그리고 넘쳐나는 실업자와 실향민. 전후의 경제라는 것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일반적인 경제의 양상과는 다를 뿐만 아니라 전후라는 시대상황을 인식하지 않고 경제를 바라볼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청춘 쌍곡선>은 전후의 우울한 상황을 강조하기 보다는 해피엔딩과 함께 50년대의 사람들에게 웃음을 준다. 아마 <청춘 쌍곡선>의 스탭들은 부족한 물자 속에서 힘들게 영화를 찍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톡톡 튀는 코미디적 아이디어로 전후의 사람들에게 100분의 현실도피처의 역할을 충분히 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by 아줌마씨 | 2009/09/30 23:03 | 영화 | 트랙백 | 덧글(1)

하녀(1960)

 


포스터


 

포스터부터 그로테스크 하다.





 하녀의 오프닝은 남매의 실뜨기로 시작된다. 실은 안에서 밖으로 밖에서 안으로 복잡하게 드나들며 어디가 끝이고 시작인지 분간 할 수 없게 한다. 실뜨기는 반복적인 느낌으로 우리의 눈을 현혹한다. 김 기영 감독은 이 실뜨기로 우리를 현실과 환상이 뒤섞인 세계로 초대하는 듯하다.

 

 내가 주목한 것은 계단의 사용이다. 계단은 영화 내에서 유독 자주 눈에 띄인다. 계단은 2층과 1층을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1층은 현실이다. 단란한 가정이 있다. 가정을 위해 헌신하는 아내와 절름발이 딸, 장난꾸러기 아들의 공간이다. 반면 2층은 환상의 공간이다. 혹은 부정하고 싶은 현실이 될 수도 있다. 2층은 이은심의 관음과 김 진규의 간통이 이루어지는 장소이다. 엄 앵란이 김 진규에게 고백을 하는 장소이고, 김 진규가 하녀 이 은심과 관계를 맺는 장소이다. 2층은 김 진규를 목표로 한 여자들의 싸움의 장이 되기도 한다. 이 은심은 정부인 주 증녀의 머리채를 잡고, 엄 앵란의 가슴에 칼을 꽃는다. 2층에서 항상 승리하는 사람은 하녀 이 은심이다. 하물며 김 진규와의 관계 시에도 하녀 이 은심은 항상 그의 발등을 밟고 그의 위에 올라가 관계를 가진다. 신기하게도 2층에서는 이 은심의 뜻대로 일이 이루어진다. 1층에서는 물을 가져다 줘도 먹지 않던 아이들이 2층에서는 순순히 받아 마시고, 1층에서 이 은심의 따귀를 때렸던 김 진규도 2층으로 올라온 이상은 하녀와 관계를 가진다.급기야 임신한 정부인 주 증녀를 되려 자신의 하녀처럼 부린다. 마지막 결말에서 하녀는 김 진규를 설득하고 설득해 결국 독약을 함께 마시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김 진규는 아내 곁에서 죽겠다며 계단을 내려가고, 계단을 다 내려간 지점에서 이 은심의 마법은 힘을 잃어 김 진규는 아내 곁으로 갈 수 있게 된다. 영화의 미술적인 부분으로 보았을 때에도 1층은 밝고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어둡다. 마치 천국에서 지옥으로 끌려가는 느낌이다. 게다가 2층이 거의 다 된 계단에는 이상한 괴물 모양을 한 얼굴 부조가 붙어있다. 교수님이 말씀해 주신 키워드로써 계단의 의미를 찾아보면 옛날 한옥 양식의 건물에는 1층과 2층을 분리하는 높다란 계단은 존재하지 않았다. 1층과 2층으로 분리된 집의 형태는 서양에서 들어온 근대 문물이다. 김 진규도 처음부터 ‘새 집’으로 간다 하지 않고 ‘2층집’으로 간다고 강조한다. 2층집에 이사 오며 가족의 불행은 시작된다. 비오는 날에 하녀를 맞이하고 비오는 날에 하녀도 죽는다.


 

스틸이미지

표정이 굉장히 섹시합니다.



 하녀로 분한 이 은심씨의 연기가 너무나도 인상 깊었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대담한 노출 연기이다. 비록 옷을 벗지는 않았지만, 비에 젖은 슬립은 노출 그 이상의 선정적인 느낌을 주었다. 게다가 당시는 60년. 50년대의 빈곤과 보수가 채 가시지 않은 상황이었다. 노출 연기가 거의 전무하다고 생각되어지는 시기에도 이 은심씨의 당당한 연기는 너무도 매력적이었다. 김 기영 감독님은 세련되고 멋진 에로티시즘을 추구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조금이나마 느끼게 된 부분이었다. 하녀는 당시 만연해 있던 보수적이고 수동적인 남녀관계에서 벗어나 있다. 하녀는 주인집 남자를 먼저 유혹하고 (팜므파탈의 모습) 관계시에도 항상 남자의 위에 있다. 이는 하녀와 고용주로 대표되는 수직적인 관계를 포함함으로써 남녀관계의 전복 그 이상을 의미한다고 생각했다. 이 은심의 너무도 사실적인 연기 때문이었을까, 그녀를 본 사람들이 욕을 하고 머리채를 잡는 등 하녀 이후 이 은심의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고 한다. 하녀의 악녀 이미지가 너무 강해 그녀에게 더 이상의 영화제의는 들어오지 않았고 그녀의 필모그래피는 ‘하녀’ 한 작품으로 끝난 비운의 배우가 되었다.

 

 하녀가 김 수현 작가의 손을 거쳐 리메이크 된다고 한다. 김 기영 감독은 타계 전에도 배우 이 지은씨와 작업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셨다고 하는데 이 지은씨가 하녀역을 맡아 연기하는 모습이 궁금해진다.

by 아줌마씨 | 2009/09/30 22:46 | 영화 | 트랙백(1)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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